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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나라로 간다9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0-17 10:00

드림 트레일은 영원히
-배어 룬 호수에서 베넷 호수까지

 호수가 아침안개에 잠겨 있다.외로운 섬을 지키던 물새도 아직 곤히 잠든 시각에 나그네 홀로 깨어 상념에 젖는다. 무엇을 위해 달려 왔던가? 또 어디로 흘러 갈 것인가? 태어남이 제 뜻이 아니었듯 떠남도 제 뜻이 아니며, 어디에서 온지 모르듯이 역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일. 구름이 언제 어디로 간다 기약하던가? 산들바람 한 가닥에도 흩어지고 새의 날갯짓에도 허물어지는 구름이 내일을 작정하여 무엇하리.

 산 너머 볼그레 먼 동이 트기 시작한다. 태양이 지상에 빛의 점화를 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호숫가로 나간다. 한참을 기다려 산턱에 걸린 수정알이 걸리는 순간을 사진기에 담는다. 광명과 화평, 희망도 담아냈을까?

 남아있는 여정은 4.4km. 아무리 느긋하재도 한 번 조인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팀원 덕에 6시 식사,7시 출발. 우산각 같은 쉘터의 왼쪽 다리를 건너면 숲속길이 나온다. 800m 정도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로그 캐빈으로 가는 길, 왼쪽 길을 택한다.



 로그 캐빈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몰리 월치(Mollie Walsh)의 비극적인 생애가 몹시 애닯다. 한 시대를 여는 게 풍운의 장부라면 그 역사의 그늘엔 언제나 눈물 흘리는 여인이 있다. 욕망과 모험심이 거칠게 파도치는 골드러시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낸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끼며 오솔길을 간다.

 초록숲이 사라지고 늪 같은 작은 호수, 머리숱 적은 소나무숲 사이에 난 신작로 같은 모랫길이 나온다. 해변을 걷듯 다리가 팍팍해 오는데 해변 같은 낭만은 없다. 모랫길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통나무집이 있다. 처마밑에 연장 몇 개 매달려있고, 안에도 난로며 집기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볕을 물고 한층 황금빛 짙어진 모랫길에 풀풀 먼지가 난다. 카크로스를 지나고 있나 보다. 화덕 속에 던져진 고구마처럼 꾸덕꾸덕 구워지며 고행의 길을 간다. 하이킹은 항상 마지막 구간이 지옥 같다.

 트레일이 아기 엉덩이처럼 둥그스럼 내려가며 제법 바람이 불어든다. 그래도 안 속는다, 옥색 적삼이 보이거나 찰찰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이 악물고 발끝만 보며 걷는데 “어, 저기 집이 보인다.”팀원의 외침. 고개 들어 바라보니 나무 사이로 얼핏 비치는 옥색 고름. 와, 호수다! 베넷 캠프사이트 약도 그려진 게시판이 서있다. 오래된 목조 건축물 세인트 앤드류 교회(St. Andrews Church. 베넷에 남아있는, 골드러시 시대 유일의 원건물)가 하얀 세월을 물고 단아한 역사(Station)를 굽어보고 있다.

 베넷 호수는 녹색의 자물쇠에 잠겨있는 뒤주 같다. 양편의 녹색 언덕과 바위산들이 그대로 호수에 들어와 있다. 망국의 유폐된 황후라 할까. 근대화된 세상에서 옛 황조의 복색을 입고 퇴색한 궁정을 서성이는 폐황후 같은 베넷 호수를 알현한다. 저 곱게 주름진 호수의 소맷자락에 얼마나 많은 욕망과 고뇌가 감춰졌을까?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자신의 시대를 얼마나 그리워할까? 그러나 그건 인간의 생각일지 모른다.

시절이 오고 감에 무심한 호수는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지 않고 지금의 쇠락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세월의 도투마리를 감고 있을 뿐. 무심 무행 수도 중인 비구니 같은 베넷 호숫가에 낡은 배 한 척 있어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베넷에서는 하루에 200여 척의 배를 만들어 다슨 시로 실어내 갔다. 1989 년 화이트패스 철로가 놓이면서 베넷 시티가 쇠락하게 된다.)



 새로 단장한 역사는 알라스카와 유콘, 두 개의 명찰을 달고 있다. 레스토랑이 함께 있다. 파이어위드 하느작거리는 벤치에 앉아있다가 기적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기차에 먼저 배낭을 싣는다.(짐칸이 따로 있어 하차 때까지 꺼내지 못하므로 필요한 물품은 미리 꺼내 놓을 것.) 10시 30분, 드디어 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선두를 다투어 들어간다. 얼마만에 맛보는 문명의 음식인가. 주문(기차 예약 시 점심도 주문할 수 있다, $15/인)해둔 비프 스튜와 구수한 빵, 커피와 얼음물을 허겁지겁 먹는다. 각기 세 접시씩 먹고 옛 지도가 그려진 식탁 매트도 기념품으로 챙긴다.

 화이트패스&유콘기차(화이트호스에서 스케그웨이까지 1200km의 철로를 노다지의 꿈을 싣고 달렸으나,현재는 스케그웨이에서 카크로스까지만 운행.)는 보통보다 조금 좁은 헵궤선로를 가는 꼬마 기차다.오늘은 승객이 적어 하이커 칸과 관광객 칸 달랑 두 량만 달고 간다. 이마를 찧을 듯 가까워오는 바윗날과 흰 꼬리를 물려 달려오는 강 같은 호수 사이에서 허물어진 간이역, 호수에 빠진 바위섬 등을 보며 덜컹거리고 가는 장난감 같은 기차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와 자연 해설이 곁들여진 승무원의 입담에 호쾌하게 웃는 사이 어느덧 카크로스에 닿는다.



 과거로의 여행이 끝난다. 그러나 인간의 꿈은 결코 퇴색하지 않는법.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는 빛 바랜 사진처럼 앨범 속에 잠자겠지.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활활 타오르고, 모험을 향한 인간의 도전이 끝나지 않는 한 도처에 드림 트레일(Dream Trail)이 놓여질 것이다. 그리고 또 그들의 꿈을 향해 개미처럼 기어 오를 것이고… .

 사막지대 카크로스 에서 칠쿳 트레일 하이킹을 마친다. 그 기념으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스케그웨이로 가는 셔틀버스를 탄다. 이젠 퍽퍽한 사막 같은 야생 하이커가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관광객이 된다. 광대한 알라스카는 또 무슨 밀어를 속살거려 줄지….




*로그 캐빈(Log Cabin) :화이트 패스 가까이에 있는 골드러시 시절의 작은 커뮤니티. 통나무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 베넷까지 12km의 철로로 이어지며 화이트호스 패스에 닿는 지름길.현재 폐쇄되어 있음.

*몰리 월시(1872~1902): 몬타나 작은 타운에서 태어나 골드붐을 따라 스케그웨이에서 웨이트레스와 교회 봉사를 하다가, 로그 캐빈으로 이주하여 텐트를 운영. 당시 아름답고 매력있는 여인으로 인기가 많았다. 이름난 두 패커(마이크와 잭)가 그녀를 사랑했으나 마이크와 결혼함. 술주정뱅이가 된 남편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자 아이를 데리고 시애틀로 이주. 1902년 마이크가 찾아와 시비를 하던 중 남편의 총격에 의해 사망. 1930년 몰리를 잊지못한 잭이 그녀의 청동 흉상을 제작, 현재 스케그웨이에 그녀의 이름을 딴 공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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